< 수다가 좋다 :: '수상한 삼형제' 콩가루 집안의 명절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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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가 좋다

이제 곧 설이다. 설이라고 설레고 좋았던 것은 역시 학생 때가 아니었나 싶다. 물론, 결혼하기 전에도 꽤 괜찮았다. 친구들과 만나 영화보고 밥먹고 차마시고...시간적으로 금전적으로 여유가 많았으니 넉넉했다. 그러던 것이 나이를 먹고 점점 큰집에 인사가는 것이 조금씩 부담이 되기 시작한 것은 필자의 나이 30이 가까워지면서 부터였다. 결혼 언제하냐, 국수는 언제 먹여주냐...직장은 잡았냐를 시작으로 했던 어른들의 걱정는 어느새 결혼으로 건너 뛰었고 결혼하니 그 모든 걱정에서 해방됐다.
하지만 해방은 곧 다른 부담으로 이어졌다. 설이나 추석이라는 명절에는 꼬박꼬박 시집이라는 곳에 가야했고 그곳에서 기름에 쩔어 손이 팅팅 불도록 설거지를 해야 했다. 추석 땐 송편 빚느라, 설 땐 만두 빚느라 쪼그리고 몇 시간씩 앉아 노동을 하다 보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싶을 때도 많다. 이제 그것도 10년 전이다. 결혼 11년차, 이제 10번째의 설을 맞지만 여전히 부담스럽고 하기 싫고 가기 싫고 그렇다.

이런 증상이 보통 명절 앞두고 일주일전부터 시작됐는데 '수상한 삼형제' 를 보고 더 심해졌다. 도우미는 이름값 하느라 하루 종일 주방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오는 사람마다 밥 차려 되면서 아이들까지 챙기느라 기름에 쩔고 손에 물 마를새 없이 그렇게 힘겹게 명절을 보내기 위해 시간을 보내는데 큰 며느리라고 하는 엄청난은 숨겨놓은 아이까지 데려왔으면서도 지 혼자 먹고 살겠다고 집안 일엔 상관도 없고 막내 며느리는 친정 차례를 챙기겠다고 와보지도 않았다. 빨리 일 끝내고 갈 친정도 변변하지 않은 도우미가 안타까운 마음에 이 나라에 며느리로 사는 한 사람으로 울분을 토했음이다. 같은 며느리이면서 사전에 그 어떤 양해도 없이 친정이 먼저인 주어영이나 먹고 살겠다고 보험 영업하러 다니는 엄청난이나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필자가 도우미의 편이라서가 아니라 분명 그들의 사고 방식이 잘못됐다.

수상한 삼형제 - 뉴스엔

엄청난은 숨겨놓은 자식까지 데려와 엉겨있는 상태다. 그런 상태에서 왜 꼭 설날에 보험 영엉을 하겠다고  그렇게 돌아다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도우미의 투정에 나도 일했다고 엄청난은 당당하게 말했지만 도우미의 말마따나 그렇게 일하는 것이 도우미한테는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 말 그대로 엄청난이 먹고 살기 위해 일한 것 아닌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지 먹고 살자고 일했으면서 당당하게 나도 일했다고 말하는 엄청난의 뻔뻔함에도 짜증스러웠지만 데리고 들어온 종남이를 그저 불쌍하다는 단어로 감싸고 덮으며 잘 봐달라는데도 기가 막혔다. 도대체 저런 뻔뻔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저 황당하고 당황스럽고 짜증이 밀려오는 장면의 연속이었다.
뿐인가. 결혼하고 처음 맞는 설에 친정을 우선으로 하겠다고 싸우는 주어영도 어이가 없긴 마찬가지다. 결혼 전에 미리 의논하고 양해를 구한 것도 아니고 결혼하자마자 아이는 계획적으로 낳아야겠다고 신혼첫날밤부터 싸우지를 않나 이번엔 설인데도 불구하고 친정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시댁에 가지 않는다. 밤늦게 용돈 챙겨 아주 잠깐 손님처럼 방문하는 당당함을 보이기까지 했을 뿐 아니라 설날엔 가출한 동생 돌아왔다고 하던 설거지도 팽개치고 가버렸다.

물론, 이런 일들은 현실에도 다분이 존재하는 며느리들간의 문제다. 재산은 큰아들이 물려받았는데 아무것도 받지 않은 막내가 부모님을 모시고 산다던가 하는 일은 우리 주위에도 많다. 며느리가 많아도 꼭 일하는 며느리 따로 있는 것처러 그런 집도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문제는 주말, 가족이 함께 시청하는 시간대에 하는 드라마는 '솔약국집 아들들' 같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누구는 더 일하고 누구는 덜 일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같이 더불어 함께 일하는 그런 가족의 모습을 봤으면 하는 것이다.

'수상한 삼형제'는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같이 보면 볼수록 훈훈함과는 거리가 먼 화를 부르는 이야기다. 통쾌한 복수극도 아니고 그렇다고 권선징악이 뚜렷한 동화같은 결말도 아니고 지지고 볶고 사는 우리네 이웃들의 평범한 이야기도 아닌 그들의 이야기가 점점 짜증의 도를 지나칠수록 시청률이 높아가는 것이 그저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