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못남'의 신선함은 어디로 갔나 싶을 정도로 어제는 상구와 함께한 지루한 시간이었다. 책임감으로 시작해 정(情)이 깊게 들었다는 이야기로 주제를 잡아야 하나, 아님 조재희란 사람이 빡빡한 것 같아도 내심 여린 마음씨의 곧은 남자라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었을까.
'혼자서도 잘해요' 에 딱 걸맞게 그는 지금까지 혼자 살아서 불편하다는 것 전혀 없이 잘 살았다. 고깃집에도 혼자 들어갈 줄 아는 용기가 있고, 전혀 다른 사람의 시선을 게의치 않고 와인에 고기를 한점 한점 즐길 줄 아는 진정한 고기 매니아다. 뭘 하나 하더라도 허트로 하는 법 없는 철두철미하게 해야 만족하고 자신의 세계에서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의 변화가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처음 그의 모습이 더 그립다.
'결못남'이란 타이틀과는 상관없이 결혼이랑 무관하게 행복한 사람으로 보이는 그가 결혼을 해야만 살 수 있는, 아이를 낳아야만 평범한 가정으로 치부하는 이 땅의 편견을 자유롭게 이겨낸 멋진 남자가 조재희 아닌가.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양념장엔 청량고추가 들어가야 하고, 모든 것은 가지런히 정리정돈 되어 있어야 하고, 자신의 공간은 대인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으로 아무도 들이지 않겠다는 그가 부러웠다. 더불어 살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는 그가 부러웠다. 배고파도 혼자서는 분식집도 들어가지 못하고, 혼자만의 취미생활도 없고, 그렇다고 집착할 좋아하는 일도 없는 아줌마인 내게 그는 아주 신선한 캐릭터였다. 내가 저렇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저렇게 혼자서 잘 사는 남자가 있다는 것이 신선했다. 그는 거기다 해박한 지식과 상식까지 갖고 있는 서투른 인간관계 만큼이나 매력적이었다.
거의 모든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은 못됐어도 자신의 여자한테만 잘하거나, 두루두루 잘하는 천성이 착한 남자이거나, 능력 없지만 착한 남자이거나 나쁜 남자이거나 했다. 조재희는 결혼에 관심없지만 두루두루 다 잘하는 남자다. 그런 남자이기에 저렇게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동경을 품었더랬다. 근데, 그가 평범한 우리네와 똑같아지려고 한다.
'결혼에 관심 없을 뿐 연애에는 관심있다'고 서투르게 말하는 조재희에게 장문정은 최선을 다해 눈을 동그랗게 크게 뜨고 '연애에는 관심있어요?' 했다.
이 땅의 모든 남녀가 결혼을 해야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하고, 사교육비에 치이고, 집 장만하는데 몇 십년이 걸리고, 하고 싶은 것도 맘대로 못하고 그렇게 노후를 맞게 되는 평범의 틀, 우리들이 정해놓은 테두리안에서 남들도 다 이렇게 산다고 위로하며 사는 우리들에게 그는 분명 이단자였다. 저렇게 사는 것도 재밌겠다. 혼자만의 생활을 저렇게 잘 꾸릴 줄 아는 남자라면, 저렇게 취미 생활이 확실하다면 늙어서 등긁어줄 사람이 굳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뵀다. 근데, 그 남자가 연애를 하겠단다. 옆집 상구한테 마음을 주고, 그것도 모잘라 장문정한테도 마음을 열려고 한다. 아주 서툴게 조심스럽게 말이다.
결국은 결혼 못한 남자가 연애를 하고 연애를 하니 같이 살고 싶고 자신만의 공간에 여자를 허락한다면 뭐 그것도 그 사람 마음이겠지만, 왠지 그의 변화가 윤기란(양정아)처럼 반갑지는 않다. 조재희 만큼은 혼자서도 잘하면 안될까.
40대의 싱글이 혼자서 외로움 타지 않고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인 내 주위의 많은 싱글들에게 그는 위로가 됐는데 그의 변화를 어떨까 싶다.
그렇다면 결혼 못하는 남자는 그냥 그렇고 그런 캐릭터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