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커간다는 것은 그만큼 엄마인 내가 한살한살 먹어간다는 것이고 내가 먹어가니 우리 엄마, 아빠는 어떻겠나. 할아버지, 할머니란 단어가 싫다고 경기하시던 그 분들이 이제는 할머니 할아버지일 수 밖에 없는 연세가 되셨다. 낼 모래면 칠순이니 이제는 할머니란 단어에 익숙해지신 모양이다.
낼 모래면 칠순인 엄마가 오늘 쇼크로 응급실을 찾았다. 자꾸만 부어서 혹 무슨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닌가 싶어 동네 내과에서 필요한 기본적인 검사를 했다. 소변검사, 피검사, 그리고 심전도, 골밀도 같은 검사들 말이다. 그렇게 검사를 하고 결과가 나쁘지 않음에도 붓기가 내리지 않자 대학병원을 찾았다. 대학병원의 특성상 피검사 하는데도, 소변검사 하는데도, 초음파검사를 하는데도 예약을 해야 했고 그렇게 2주간의 시간을 들여 검사를 하고 오늘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이었다.
엄마와 언니가 만나 결과를 듣기로 했는데 예약시간인데 전화가 왔다.
"엄마, 어떻데?"
"엄마가 이상해. 식은 땀을 샤워한 것처럼 흘리고 거기다 변까지 바지에다 보셨어. 응급실 가야 하나?"
"어? 빨리 가"
그렇게 통화를 마치고 바로 응급실로 갔다. 엄마는 가슴을 킹콩처럼 치면서 답답하다고 하소연하고 있었고, 의사들은 인턴부터 레지던트할 것 없이 엄마를 둘러싸고 있는데 엄마와 연결된 모니터만 열심히 체크할 뿐 그 어떤 특별한 조치도 없는 것이다. 엄마는 저렇게 괴로워 어쩔 줄 모르는데 도대체 의사라는 사람들이 왜 이러고 있나 싶을 정도로 답답한 시간이었다.
엄마의 상태는 심장이 움직이지 않아 잠깐 심폐소생술까지 해야할 정도로 심각했고 그에 따라 맥박도, 혈압도 정상보다 심하게 거리가 먼 수치였는데 달리 대학 병원이 아닌 듯 엄마는 몇 시간 만에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위험하다고 가족을 부르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다들 어쩔 줄 모를 만큼 당황하기도 한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몸 속의 칼륨수치를 낮춘다고 관장을 두번이나 했다.
의사나, 간호사라는 직업이 그냥 단순이 돈을 많이 버는 전문직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응급실의 몇 시간은 그분들의 노고에 많이 감사하는 시간이었다.
관장을 두 번씩이나 했지만 엄마는 거의 의식이 없는 상태로 기저귀를 채운 상태였다. 그런데 간호사는 마스크도 끼지 않고 그저 손에 고무 장갑을 낀 상태로 뒷 처리를 하는 것이다. 내 엄마인데도 냄새가 싫어 고개를 돌릴 지경인데 간호사는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환자분 조금만 참으세요" 하면서 물티슈로 깨끗하게 닦아내더니 '잘하셨어요' 하는 것이 아닌가.
언제나 나를 지켜줄 것 같은 엄마가 저렇게 무기력하게 누워 있다는 것도 충격인데 아무리 응급상황이라고 하더라도 기저귀까지 하고 있는 엄마는 딸인 내게 많이 아팠다. 많이 아프고, 이제는 엄마가 늙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더 이상 엄마는 기댈 곳이 아니라 보살펴드려야 할 존재라는 걸 인정해야 할 것 같은 복잡한 심정이었다. 딸은 그렇게 넋 놓고 있는데 간호사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직업적인 어떤 소명이 없다면 그렇게 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엄마가 흘린 피에, 바지에서 묻은 변 때문에 시트가 더럽혀진 상태로 되어있자 시트도 새로이 갈아 주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엄마가 거의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는데도 간호사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백의의 천사라는 말이 나온 것일까.
친절한 간호사를 많이 봤지만, 그렇지 않은 그냥 의무적으로 사무적으로 대하는 간호사도 많이 봤다. 아무리 친절교육을 받고 현장에 임한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환자를 위하는 마음이 없다면 불가능하다고 본다.
백의의 천사 덕분일까, 엄마는 회복세로 들어섰다. 아직 중환자실에 계실 정도로 위중하긴 하지만, 그래도 한 고비 넘겼다는 의료진의 소견에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