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남자보가 공간지각능력이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주차할 때 다른 차에 피해준 적 없이 능숙하게 잘한다. 근데, 이것은 연습으로 가능한 것이고 초행길은 한 두번 왔다갔다 한 것으로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건물의 앞쪽에 주차했다 뒤쪽 출구로 나오게 되면 순간적으로 여기가 어딘가 싶은 것이 당최 방향감각 상실이다. 그런 나이기에 네비게이션(이하 '네비')은 요긴한 제품이다.
네비만 있으면 어디라도 걱정 없이 갈 수 있겠구나 싶었다.
물론, 아주 똑똑하다. 가끔은 초행길에 빨리 안내를 해줬음 좋겠는데, 다운된 것처럼 그렇게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네비를 보고 있자면 아주 속이 타기도 한다. 그래서 저만치 갔다 유턴하고 돌아온 경우도 많다.
네비가 있어 모르는 길도 쉽게 찾아갈 수 있지만, 완전하게 믿을 수는 없는 것이 네비이기도 하다.
한번은 강변북로를 가고 있을 때였다. 강남에 있는 병원을 가는 길이었는데, 안내를 잘 하고 있었다. 강변북로를 달리고 있을 때였다. 바로 옆이 한강인데 네비가 그러는 것이다.
"잠시후 우회전 하십시오"
말 잘듣는 네비 신봉자였던 나는 말 그대로 우회전 할 뻔했다. 이게 미쳤나...우회전이면 한강인데 나보고 한강으로 뛰어들라고??
'잠시후 우회전 하십시오' 했던 네비는 내가 한강으로 뛰어 드나 안뛰어 드나 보겠다는 심산인 것처럼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러더니 '직진하십시오' 하는 것이 아닌가.
밝은 때 이러면 그래도 방향감각이 살아 있어 낫다.
동기들과 강화도로 여행을 갔을 때다. 퇴근하고 늦은 시간에 만나 출발했다. 당연히 깜깜한 밤이었고, 오직 네비에 의존해 운전했다. 강화도까지 잘 오긴 왔는데, 입력한 목적지인 펜션을 네비가 잘 못찾고 방황하는 것이다.
"우회전 하십시오"
그래서 우회전하면 '경로를 재 탐색중입니다….' 란 문구가 나오고
"유턴하십시오"
그래서 유턴하면 또다시 '경로를 재 탐색중..'이라는 문구가 뜨는 것이다. 그렇게 우회전, 유턴, 좌회전을 하고 보니 산으로, 산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내가 길치라고 하더라고 이건 아닌 듯 싶어 유턴해 큰 길로 다시 빠져 나왔던 기억이 있다.
여행길엔 특히나 길이 낮설다. 그 낯선 길은 오직 네비로 의존해 이동하는데, 네비가 장난도 친다.
직진하고 있는데 네비가 말한다. "우회전 하시고, 바로 좌회전 하십시오"
말 그래도 옆으로 빠져 나갔다 바로 좌회전했다. 그랬더니 좀 전의 그 직진 도로가 아닌가.
그냥 쭉 직진하면 될 것을 우회전으로 갔다 좌회전을 해서 다시 원위치를 만들기도 한다.
네비를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지인 둘이 여행을 가는데, 중간 목적지로 공덕 오거리를 정하고 최종 목적지 강원도를 지정했단다. 중간 목적지 공덕 오거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1시간을 헤맸단다. 중간 목적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맴맴 돌아 결국은 경로취소 후 다시 목적지를 설정했다는….
네비 작동법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실수이기도 하겠지만, 네비가 100% 믿을 만 하지는 못하다. 가금 네비때문에 웃기도 하고, 도움도 많이 받지만, 그래도 한강으로 뛰어들라는 건 좀 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