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산'에서 영조 이순재가 하차한다. 정확히 말하면 하차가 아니라 승하하시기 때문에 더 이상 출연이 불가능한 것이다.
극중의 영조는 매병에 걸렸다. 80이 넘도록 왕을 했으면 할만큼 했으니 더 이상의 미련도 없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아직 할일이 있는데 하는 대목에서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세손에게 좀 더 반듯한 정치적 기반을 마련해 주지 못하고 물러 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을까..글쎄, 그건 영조만이 알지 않겠나.
매병에 걸린 왕이라니..그런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않은 왕에게 한 나라의 통치를 맡긴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인데 그 누구도 알리지 않고 쉬쉬하고 있다. 왕마저도 자신의 매병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표독하고 영특한 중전은 영조의 매병을 기회삼아 다시 일어섰다.
정순왕후 중전의 눈물범벅에 애절함까지 보태 영조의 매병을 낫게 하겠다고, 용서 받을 수 없는 거 알지만 영조의 매병을 낫게 한 후에는 다시 죽어 살겠다고...가증스럽다 못해 훌륭한 애절 연기에 섬찍하기까지 했다. 정신이 잠깐 나간 동안 오라비 김귀주를 불러들이고, 자신의 등에 칼을 꽂을 중신들을 카리스마짱인 눈빛으로 제압하고, 화완옹주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굴욕의 사죄를 받아냈다.
줏대없는, 제 살기에 급급한 중신들이, 언제 또 어떻게 등을 돌릴지 모를일이지만 우선은 그녀의 힘이 되어야 하는 자들이니 그녀로서는 용서하고 싶지 않아도 넘어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야 훗날을 기약할 수 있고, 어차피 그들이 있어야 그녀에게도 힘이 되니 적과의 동침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쩔 수 없는 공생관계는 되어야 하는 그런 관계리라.김여진의 표독에, 애절에,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가증스러움이, 거기에 팽글팽글 돌아가는 머리회전에 중신들을 제압하는 리더쉽까지! 김여진이 연기해 더욱 정순왕후가 돋보이는 듯 싶다.
송연이와의 러브스토리의 발화점을 만들어 보려 애를 죽기 전까지 극한 상황으로 모는데 2회를 낭비해 보는 이로 하여금 지루함에 몸부림치게 하고 무한도전팀이 군데군데 어수선하게 이것이 드라마인지 정체성을 알 수 없는 방송까지 하더니 이제야 제자리로 돌아온 듯 하다.
영조는 왕위를 양위하고 정조가 즉위한다.
정조는 즉위해도 그가 원하는 정치를 하기까지 안정화에 10년이 넘는 시간을 낭비했다. 정조만 그렇겠는가. 어느 왕이든 처음 왕자리에 앉으면 자신의 사람을 만들어야 할 것이고, 자신의 생각대로 일을 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세종대왕도 안정된 왕권을 휘두른 것이 왕위에 오른지 8년이 지난 후 라고 하지 않은가.
그렇게 보면 우리나라 대통령 임기가 5년인데 그동안 무엇을 얼마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싶기는 하다. 뒷배가 없는 대통령이라면 특히나 자리잡기, 힘겨루기 하다가 끝나는 것이 아닐까.
어찌되었건 이산 그는 후세에 정조대왕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그는 누구 못지 않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고단한 세손의 시절을 보냈고, 왕이 된 후에도 뒷배가 되주지 못하는 중신들과, 세손시절 힘이 되주었던 홍국영을 강약 조절없이 한없이 키워 인재를 제대로 쓸 줄 몰랐다는 평가도 있다. 인재등용의 미숙함을 일처리에 있어서도 뒷배가 받쳐주지 않아 힘을 받지 못했고 그래서 불발되는 일도 많았고,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백성을 생각하는 군주였고, 개혁을 갈망했지만 개혁을 완성하지는 못하고 독살되지 않았을까 싶게 죽었다. 그의 죽음이 석연치 않기에 더더욱 아쉬움이 큰 왕이다.
어려움이 많았기에 더더욱 백성을 생각할 수 있는 군주가 되어 개혁을 갈망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앞으로 그려낼 정조도 순탄치만은 않을 듯 하지만, 그래서 '이산'이 재밌는 것이 아닐까 싶다.


